20년 된 구축 아파트, 1년 살아보니 아쉬운 점 몇 가지
지난봄에 이사 온 우리 아파트는 2004년에 지어졌다.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조나 섀시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고 빛 잘 드는 것도 좋다. 거의 1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금도 아주 만족스럽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첫째, 너무 오래되어 쓸 수 없는 빌트인 오븐과 식세기, 김치냉장고다. 주방 베란다에 있는 김치냉장고는 임대인에게 이야기해서 빼서 버렸는데, 주방에 있는 고장 난 오븐과 식세기는 그냥 두어야 했고, 죽은 공간이 되어버렸거든. 둘째로 아쉬운 건, 안방 화장실이 물청소하기 조금 어렵다는 거다. 바닥 타일을 깔 때 아주 미묘한 경사가 잘못된 듯하달까.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거실 베란다 화단이다. 이 무렵 지어진 아파트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던데, 지어진 지 20년 후 이사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먼지 날리는 불모의 공간일 뿐이다.
자가로 이사오는 것이었다면, 리모델링을 해서 아쉬운 점들을 고쳤겠지만, 전세로 들어왔기에 좋은 점에 만족하고 아쉬운 점은 그냥 감수하고 살기로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아쉬움인 베란다 화단은, 셀프 시공으로 조금 손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이사 직후부터 벼르다가 시간이 생긴 얼마 전, 혼자서 뚝딱뚝딱 고쳐봤다!
흙 있는 아파트 베란다 화단, 어떻게 고칠 것인가?
일단 비포 사진부터 공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흙과 모래가 있기에 그 위에 뭔가를 올릴 수가 없다. 내 경우는 작은 화분 하나만 올려두고 썼다. 이전에 살던 분은 저길 비닐 같은 거로 덮고 자전거랑 킥보드 같은 것들을 첩첩히 올려 쌓아 뒀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검색을 먼저 해봤다. 가장 좋은 건, 흙을 다 빼내고 깨끗하게 한 후, 크기에 딱 맞게 나무 덮개 같은 걸 짜서 수납형 벤치로 쓰는 것 같다. 화단이 꽤 넓고 깊기에 자질구레한 물품들(캐리어, 배드민턴 채, 휴지, 상자 등)을 보관할 창고로 쓸 수 있고, 봄과 가을에 날 괜찮을 때는 앉아서 햇빛 받으며 차 한 잔 할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 되더라. 빨래를 널어도 되고. 그러나 이 작업을 하려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일단 흙을 퍼다 버리는 데에도 비용이 제법 발생하고, 먼지 없이 깨끗이 청소한 후, 딱 맞게 안정적인 덮개를 맞추는 데에 최소 몇백만 원이 필요하다. 만약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이라면, 좀 아깝더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시공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서두에 말했듯 나는 세입자이므로 이 옵션은 패스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할 수 있는 건, 이전 세입자처럼 비닐을 대강 덮어서 그 위에 짐을 잔뜩 올려 창고처럼 쓰는 거다.
근데 나는 이것 보다는 조금 더 깔끔한 비주얼을 원했다. 셀프 시공이 가능하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으면서, 비닐만 덮는 것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그런 방안은 없을까, 폭풍 검색을 했지만 잘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머리를 굴려서 내 방식대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먼지 날리는 걸 막아야 하니 일단 비닐을 덮고, 그 위에 도톰한 매트를 깔아서 보기에도 깔끔하고 공간 활용도도 높여보기로 했다. 대략적인 사이즈를 재서 비닐과 매트를 사는 데에 8~9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베란다 화단 크기 재고, 비닐 덮고, 매트 자르기
화단이 직사각형 모양이었으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중간에 둥근 호도 들어가고, 각도 좀 져있어서 비닐과 매트 재단에 약간 수고가 필요했다. 사실 엄밀하게 재고 잘라서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요즘 체력이 워낙 금방 고갈되는지라 그냥 빠르게 대강 그리고 자르기로 했다. 비닐은 크기나 모양을 잘 재지도 않고 넉넉한 사이즈를 덮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먼지도 많이 날리고, 보기에는 평평한 것 같아도 막상 비닐을 덮으려니 흙이 좀 높은 곳 낮은 곳이 있어서 이쁘게 잘 안 덮이더라. 어찌어찌 비닐을 덮고, 원래 화단에 있었던 정사각형 모양의 납작한 벽돌타일(?) 같은 걸로 가장자리를 고정시켰다.
비닐을 덮고 난 상태는 아래와 같다. 지금 보니 더 두툼한 비닐을 썼으면 좋았으려나 싶긴 하다.
그리고 나서는 매트를 잘라야 했기에 사이즈를 재서 도면을 그렸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아주 대충 그렸다. 하하.
크기가 매트 하나로는 부족해서 두 개를 썼다. 먼저 왼쪽부터 각진 부분을 잘라서 맞춰 덮고, 둥근 부분은 아래 사진 같이 먼저 덮고 나서 잘랐다. 매트는 칼로 잘 잘린다.
화단의 오른편도 왼편과 같이 재단해서 덮고 둥근 부분을 맞춰 자르면 아래 사진처럼 된다. 흙이 평탄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중간 부분이 좀 크게 울기도 하고, 둥그런 부분은 예쁘게 자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체력 떨어지기 전에 후다닥 대강이라도 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단 저렇게 마무리했다.
베란다 화단 셀프로 덮기, 비포 앤 애프터
비용은 총 8~9만원 들었고(비닐은 몇 천 원 안 하고, 매트를 뭘 쓰냐에 따라서 비용이 달라질 수 있음), 시간은 여자 혼자 3~4시간 걸렸다. 마지막은 퇴근한 남편이 조금 도와주긴 했는데, 충분히 혼자 할 만하긴 하다. 왜? 대충 했으니까..! 너무 꼼꼼하게 깔끔하게 잘하려고 하면, 계속 엄두가 안 나서 미루기만 한다. 그래서 대충 하더라도 얼른 해버리자는 정신으로 도전했다. 비포 애프터를 나란히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솔직히 그리 많이 뿌듯하지는 않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좀 더 울퉁불퉁하고 깔끔치 못하다. 그래도 기능적으로는 꽤 양호하다. 지금 저 매트 위에 캐리어랑 두루마리 휴지 30롤 짜리 선물 받은 걸 올려뒀다. 원래는 화단 옆 바닥에 있던 걸 올렸다. 바닥 공간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 거 같다.
베란다 화단이 있는데, 화단으로 이용하기는 싫고 어떻게든 덮고 싶은 분들, 가능하면 전문가의 손길로 시공하는 걸 추천하고, 나처럼 세입자로서 저렴하게 대강 흙 덮고 물건 올릴 분들은 비닐과 매트를 활용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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