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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TV

<신들의 봉우리>, 기꺼이 목숨을 건 등반

by 달리뷰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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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가 생각이 많아진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에 있는 러닝타임 95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게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사진기자의 이야기 같길래, 산도 좋고 사진도 좋으니 한 번 볼까, 라는 마음으로 재생했다. 

 

처음에는 아주 약간 지루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 일본이 주된 배경인데, 애니메이션을 만든 건 프랑스 감독이라서 더빙이 불어로 되어 있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부를 넘어 중반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을 주고 영화를 보게 됐다. '왜 굳이 저렇게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산에 오르지?'라는 물음을 혼자 속으로 백 번쯤 말한 것 같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그 질문이 명쾌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알 듯도 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lt;신들의 봉우리&gt; 포스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신들의 봉우리> 포스터

 

[줄거리] 오르고 오르고 죽어도 또 오르는 사람들

(영화 내용을 요약한 거라, 현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이고 주로 일본이다. 산악 사진작가 '후카마치'는 한때 유명했던 등반가 '하부'를 찾아 헤맨다. 왜? 하부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후카마치의 생각에, 하부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1924년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영국인 맬러리의 카메라다. 맬러리가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까지 간 건 확인됐으나, 끝내 복귀하지 못해서 등정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정상을 최초로 오른 건 1953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후카마치는 맬러리의 카메라를 찾는다면, 그 안에 든 필름을 현상해서 맬러리가 정상에 올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부 조지는 1960년대에 이름을 날린 실력 있는 등반가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다가 3일 정도 조난을 당한 적이 있다.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이때 손가락에 심한 동상이 걸려서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절단한다. 그리고는 등반가로서의 활동도 접고, 홀연 사라진다. 

 

후카마치가 하부를 찾는 과정에서, 하부의 젊은 시절 등반가로서의 삶이 조금씩 비춰지는데 하부는 제법 무심한 남자다. 같이 등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회식하는 자리에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 

두 사람이 묶여 있는데 파트너가 다치거나 의식을 잃고 못 올라온다고 쳐. 
로프 끝에서 대롱거리는데, 나까지 끌어당기니 큰일 났지. 
그럼 어떡하지? 로프를 자를래, 말래?
- <신들의 봉우리> 중 - 

 

다들 장난스럽게 대답하지만, 하부는 심각하게 '나는 끊을래.'라고 답한다. '둘 다 죽을 필요 없잖아.'라고 하면서. 회식 자리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그리고 실제로 하부는 이런 상황에 처한다. 위 대답과 달리 그는 매달린 동료(게다가 소년)를 구하려고 하지만, 그 소년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로프를 끊는다. 하부까지 같이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도 죽고, 자기는 조난 당해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흘 넘게 추위에 떨다가 손가락을 잃고, 또 당대에 라이벌로 불리는 다른 등반가도 등산 중에 죽는다. 그러니 하부가 홀연 사라진 것도 이해가 된다. 나 같았으면 산에 오르기는 커녕 산을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후카마치는 하부를 네팔, 즉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 위한 초입 마을에서 찾는다. 그는 산을 오르기 위해 거기서 혼자 8년을 준비한 것이다. 후카마치가 하부에게 맬러리의 카메라에 대해 묻지만, 그는 냉랭하게 대하며 답을 안 한다. 그러나 후카마치는 포기하지 않는다. 맬러리의 카메라도 카메라지만, 하부의 등반에 동참해 사진을 찍으려 한다. 

 

하부는 그가 따라와 사진을 찍는 건 허락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다. 자기가 위험해져도 절대 자기를 돕지 말라, 나도 네가 위험하다 한들 돕지 않을 거다, 라고 못을 박는다.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싶지만, 영화 후반부인 이쯤 되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하부에게 에베레스트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인 것이다. 

 

그렇게 하부와 후카마치는 눈 덮인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인데도 보는 내가 다 춥고 긴장된다. 90도 각도의 암벽을 두 팔과 다리로 기어 올라야 하고, 고도가 높아질 수록 산소가 부족해 정신이 아득해진다. 참고로 에베레스트는 해발 8848m의 산이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이는 산소통을 메고 등반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부는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있다. 

 

중간에 날씨가 고약해지면서 후카마치가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우리의 하부, 자기가 매정하게 뱉은 말과는 달리 가던 길을 내려와 그를 구하고, 그를 업은 채 일단 위험을 탈출한다. 이후 후카마치는 하부를 따라가는 걸 포기하고 베이스 캠프로 내려온다. 하부는 계속 오른다. 

 

하부는 끝내 정상에 오르지만, 내려오지 못한다. 그리고 후카마치는 베이스캠프에 있던 할아버지에게서 하부가 맡겼다는 카메라와 쪽지를 전해 받게 된다. 자기가 내려오지 못하면 이걸 후카마치에게 전해달라고 미리 이야기하고 오른 것이다. 후카마치는 필름을 현상한다. 

 

[감상] 어차피 내려올 걸 왜 목숨까지 걸고 오르는 것인가?

영화에서는 산을 오르다 죽는 사람이 넷이나 된다. 일단 1924년에 맬러리, 그리고 하부와 같이 산을 오르다 스스로 로프를 끊은 소년, 하부의 라이벌인 하세,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하부까지, 주요 등반가로 등장하는 이들이 다 산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무사히 내려왔다 하더라도, 산을 오르는 과정을 보면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험하다. 한 팔로 턱걸이를 충분히 해낼 정도는 되는 체력이 필요해 보인다.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니까. 

 

그럼 당연히 시청자는 계속 묻게 된다. 도대체 왜 저렇게 위험한 짓을 하는 거야? 죽을 지도 모르는 산을 왜 올라가려고 하는거야? 그냥 안전한 산에 가면 되잖아! 

 

영화가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 질문을 계속 하게 만드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런 행동은 도처에 많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이를 테면, 스카이다이빙, F1 드라이빙, 복싱이나 WWE 같은 격투 스포츠, 스쿠버 다이빙도 굳이 안전한 땅에서 발 딛고 걷는 걸 자발적으로 벗어나 위험 속에 뛰어드는 행위다. 저런 걸 하는 사람들은 저게 생계인 프로 선수들이고 일반인들은 안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정말로 그럴 수도 있긴 하다. 현대 사회를 사는 일반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목숨을 걸고 무엇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나름의 리스크를 계산하며 도전을 하고 모험을 한다. <신들의 봉우리>에 나오는 하부는, 그리고 결국은 후카마치도, 자기만의 계산을 하고 산을 오르는 것일 터. 

 

영화에서 하부는 자신이 산에 오르는 이유를 말로는 잘 설명하지 못하겟다고 한다. 등반의 맛이 있고, 그것을 잊을 수 없고, 산에 오를 때만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말을 간혹 하기는 하지만, 스스로도 이런 말로는 충분한 표현이나 설명이 되지 않는 걸 알고 있다. 중간에 하부가 후카마치에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당신은 왜 자꾸 날 따라붙지? 잡지에 실을 사진이나 원고료 때문에? 왜지? 그게 다가 아니잖나.'

 

사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명확한 답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뭔가 알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산에 가야겠다, 위험한 일에도 다 이유와 가치가 있다, 이런 수준의 단순한 납득은 전혀 아니다. 무언가를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어떤 경지가 있는 것이고, 그 경지를 향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차마 나는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경의는 표하게 됐달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음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내 앞에 놓인 나만의 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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