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 하도영의 진짜 매력은 파트2에 몰빵
<더글로리> 파트1에서 하도영은 혜정이 묘사한 한 마디 '나이스한 개새*'로 정의된다. 딱히 나쁜 건 아니고 정말 나이스해 보이는데 어딘가 오만해보이는 분위기의 남자랄까. 파트2에서는 과연 하도영이 아내 연진의 편을 들지, 바둑메이트 동은의 편을 들지 궁금했었다.
내가 궁금했던 이 질문, 10화에서 연진이 도영에게 직접 묻던데,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서있는 곳은 예솔이 옆이야." 연진의 편도 동은의 편도 아닌, 자기 자신이 있을 자리, 예솔이 옆. 이런 하도영은 파트2 내내 아주 나이스한 매력을 발산했다. 많은 매력, 한 다섯개 쯤으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1. 동은 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예의 (9화)
연진이 동은의 집에 찾아가 구두 신은 발로 방을 누빈다. 그것도 모자라 피우던 담배를 방바닥에 떨어뜨려 비벼 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같이 있던 하도영은 연진이 떠난 동은의 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해외도 아니고 한국에서 남의 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예의냐 물을 수 있지만, '깨진 유리창 법칙'을 생각해보면 도영이 대단한 게 맞다. 이미 누가 신발 신고 들어간 데다가 담배꽁초까지 떨어진 어두운 방. 이곳을 신발 벗고 들어간다는 건, 남들 따라 예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만의 예의를 단단히 지니고 있는 이에게 가능한 일이다. 신사, 하도영!
2. 전재준을 주먹으로 제압하는 실질 전투력 (12화)
하필이면 경찰서 앞, 예솔이의 생물학적 친부가 자기임을 대놓고 밝히는 재준 때문에 도영이 엄청 빡친다. 원래 양아치 같은 재준이 선빵을 때려서 입술에 피가 나는 도영, 아주 즉각적으로 더 세게 한 방 먹인다. 그리고 나서는 덤비는 재준의 주먹을 모두 피하며 배와 얼굴을 제대로 가격하는 액션씬이 펼쳐진다. 대강 세어보니, 1대 맞고 12대 때리더라. 잘 생기고 돈 많고 능력도 있는데, 싸움까지 잘 하다니! 너무 (멋진) 사기캐 아니오?!
3. 분노해 마땅한 상황에서도 폭발하지는 않는 절제 (12화)
파트2에서 어쩌면 가장 무고한 피해자는 하도영이다. 아내는 범죄자가 되고, 딸은 자기 핏줄이 아님을 알게됐으니. 이 과정에서 참으로도 뻔뻔한 연진과 재준 때문에 뚜껑 열릴 상황이 많다. 그러나 도영은 폭발하지 않는다. 당연히 미칠 듯 화는 나지만, 그것을 이성을 잃고 분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12화에서 연진과의 대화다. 이런 분노가 더 차가워서 무섭다는 걸, 박연진이 절절히 느끼고 있을 터.
예솔이 왜 어머님 댁에 보냈어?
보낼만해서. 나중에 얘기해.
내가 우리집 일을 기사 입으로...... 입술 왜그래? 싸웠어?
지금은 좋은 말 나갈 거 같지 않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그게 어려워?
내 딸이 왜 조퇴했는지 그것도 못 물어봐? 참아줬다고 생색내 지금? 차라리 나쁜 말을 해. 싸우기라도 하자고.
그래, 그럼 말해보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나 싶은데 이것부터인 것 같다.
아내의 불륜 상대가 내 딸 학교에 가서 친부 행세를 했어. 그래서 화가 나. 받아쳐 봐.
(연진 침묵)
내가 아나 모르나 궁금하지? 예솔이가 내 딸인지 아닌지? 어, 나 다 알아. 대꾸해봐.
(연진 침묵)
내가 어떤 마음으로 참고 있는데!!
이 순간에도 넌 네가 얼마나 안전한지 그것만 궁금해? 예솔이가 그 지경인데. 니가 지금 날 떠봐?
적어도 난 지키려고 했어. 숨겨서라도. 그걸 다 까발려서 깨부순 건 오빠야.
그래서 네가 지켜낸 게 뭔데? 너랑 나도, 너랑 예솔이도, 네 커리어도, 넌 뭐 하나 지킨 게 없어.
분명히 말하는데 예솔이 내 딸이야. 우리가 남이 되더라도.
- <더글로리> 12화 중 -
4. 동은의 행복을 바라고(13화), 소희 안치실 비용을 대납하는, 진실을 보는 힘
여정과 우연히 바둑 두는 데서 마주친 도영. 둘은 바둑을 두며 동은에 대해 말한다. 여정이 동은의 복수를 돕고 있음을 알게 되자, 도영은 여정에게 "문동은 씨를 아낀다면, 멈추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는다. 동은의 입장을 대변한 여정의 말을 들은 후, 도영은 다시 말한다.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바라는 겁니다, 문동은 씨의 행복을."
사실 도영에게 동은은 자기 아내를 파멸시키려는, 그래서 나와 나의 딸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여자다. 자기에게 일부러 접근했고, 어떻게 보면 자기를 이용했다. 도영 입장만 봤을 때는 충분히 짜증날 상황이다. 그러나 도영은 동은의 행복을 바란다, 진심으로. 왜일까?
바둑을 두며 매력을 느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해석이 더 맞을 거 같다. 도영은 마치 동은이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일의 진짜 원인은 동은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코앞의 사태만이 아닌 전체를 꿰뚫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나의 안위나 입장보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는 힘.
14화에서 도영은 동은과 만나 직접 묻기도 한다. "이 복수가 끝나면 문동은 씨는 행복해집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는데. 이때 도영은 동은에게서 소희 어머니의 주소를 받아간다. 소희의 시체가 안치된 병원 이름도. 그리고 나중에 보니 십수 년 밀린 시체 보관 비용을 대납한 건 도영이었다(15화).
5.예솔이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깔끔한 일처리
도영은 연진이 만든 이 난장판의 후폭풍 때문에 예솔이가 힘들지 않도록, 아일랜드 소도시로 예솔이를 유학보내려 한다. 그러면서 보호자도 함께 간다고 말한다. 이때 도영이 말한 보호자가 연진인지 도영 자신인지 헷갈렸는데, 아마 도영 자신인 거 같다. 연진의 실체를 다 알아버린 이상, 아무리 생물학적 친모라도 그런 여자에게 예솔이를 맡기고 싶진 않았을 터.
예솔이는 이미 학교에서 조금씩 소외받으며 외로워하는데, 이때 도영이 학교를 찾아온다. 아빠에게 달려오는 예솔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는데 코끝이 찡했다. 예솔이도 울고, 도영도 울컥하고.
아빠, 미안해.
아니야, 우리 공주님이 뭐가 미안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 그 어떤 것도 예솔이 잘못이 아니야.
(다정한 목소리로) 아빠 말 알았어?
- <더글로리> 15화 -
그리고 마지막에 눈 아파서 괴로워하는 재준을 깔끔히 죽여버린 건 도영이다. 재준이 살아있으면 예솔이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일 거다. 이 드라마 내내 나오는 몇 건의 우발적 혹은 계획적 살인들 이후 시체 처리가 늘 골치아팠는데, 도영은 이것마저 여지없이 처리한다. 적어도 수 년간 아무도 못찾을겨!
멋있는 건 인정! 그러나 남아 있는 궁금증들..
실제 등장하는 분량에 비해서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던 <더글로리> 파트2의 하도영. 멋있기는 한데 몇 가지 의아한 점도 있다.
9화에서 연진 옷방에 들어가 왜 그렇게 경악한 걸까? 시에스타 쇼핑백이 많은 걸 보고, 연진과 재준의 불륜 관계를 눈치채서? 이건 조금 비약 같은데. 원래 연진이 옷을 거기서 사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내가 뭐 놓친 게 있나.
11화에서 동은이 도영에게 연진을 떠나면 좋겠다고 하자 도영은 안 그럴 거라고 답한다. 이유를 묻자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연진이 살인까지 저지른 걸 알고는 떠나게 되지. 이때는 왜 안 떠날 거라고 했을까? 모르겠다니 물어볼 수도 없지만, 영 이해 안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소 과몰입한 현실적인 질문 하나. 도영은 예솔이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 친딸이 아닌 것뿐 아니라, 예솔이의 생물학적 친부는 세상 둘도 없는 쌩양아치에다가 연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졌던 불륜 상대다. 그리고 연진에 대한 마음도 애틋함 하나 남을 여지 없이 싹 정리됐을 거다. 그럼 혈연으로만 봤을 때, 예솔이는 남보다 못한 사이인 것이다. 근데 처음 드라마를 쓱 다 볼 때는 회의적인 마음이 더 큰 물음표였는데, 이 포스팅 하면서 하도영을 더 깊게 살펴보니, 왠지 이해도 된다. 계속 잘 예솔이를 사랑하고 돌봐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도영을 연기한 배우 '정성일'도 매력부자
<더글로리> 하도영의 본캐인 배우 정성일이 지난 달 유퀴즈에 나왔다. 부티나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거 같더군. 커서도 무명 배우 시절이 몹시 길었고. 꿋꿋이 걸어온 인생길에 박수를.
인스타 소개글을 보니 크리스찬 같다. 앞으로도 은혜로운 길만 걷길, 기도합니다! 배우를 보고 작품을 챙겨보는 경우는 많이 없었는데(원빈, 이나영, 조진웅, 토마스 생스터 정도?), 정성일 배우가 다음 작품을 하면 한 번 보고 싶어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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