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있는 40분 짜리 자연 다큐,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남인도에 있는 테파카투 코끼리 캠프는 약 140년 전에 건립된, 야생과 인접한 최대 규모의 코끼리 캠프다. 여기에는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보호가 필요한 코끼리들이 많이 케어를 받고 있다. 봄만 아저씨와 벨라 아줌마에게는 아기 코끼리 '라구'가 배정됐다. 엄마는 감전사로 죽고, 라구도 만신창이로 다치고 쓰러졌는데, 다행히 발견되어 코끼리 캠프로 옮겨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봄만 아저씨와 벨라 아줌마가, 아기 코끼리 라구와 나중에 또 합류한 더 아기 코끼리 암무를 돌보는 내용을 다정하고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40분밖에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내내 자연의 푸르름과 코끼리 및 여러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다.
이번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고 하니, 더 믿고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상실을 위로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코끼리, 사람과 가족이 되다
아기 코끼리 라구가 처음 발견되어 캠프로 왔을 때, 다들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태가 심각하기도 했고, 엄마를 잃고 이런 상황에 놓인 아기 코끼리들이 지금까지 대체로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구의 관리인이 된 봄만과 벨라는 극진한 애정과 정성으로 라구를 돌봤다. 그리고 라구는 차츰 회복되어 건강하고 귀여운 코끼리가 됐다.
벨라 아줌마의 말로, 라구가 말 빼고는 사람이 하는 걸 다한다고 한다. 실제로 다큐를 보면, 라구는 호수에서 몸을 씻겨주는 봄만 아저씨와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풀밭에서 공을 차며 공놀이도 한다. 다리가 네 개에 기다란 코까지 공을 다룰 수 있다보니, 라구의 드리블 실력은 꽤나 놀랍다! 그뿐이 아니다. 코로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 끄기도 하고, 먹기 싫은 음식을 주면 뱉어내는 편식까지 한다.
감동적인 부분은 코끼리가 사람의 마음을 알고 교감한다는 건데, 벨라 아줌마는 상실의 아픔을 코끼리를 통해 위로 받았다. 아무래도 숲이 우거진 남인도라 그런지, 벨라 아줌마의 전 남편은 야생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벨라 아줌마는 한동안 숲이 두려웠다. 그리고 벨라 아줌마는 딸까지 잃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자식 잃는 슬픔이라 하니 그 상실감이 참 컸던 모양이다. 어느날 딸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라구가 와서 코로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봄만 아저씨와 벨라 아줌마가 잘 해준다 한들, 코끼리한테만 배울 수 있는 코끼리만의 스킬이 있을 텐데 다행이 이것도 해결됐다. 캠프에 있는 어른 코끼리 크리슈나가 라구에게 풀 뜯는 법도 가르치고, 라구의 혀에 가시가 박혔을 때 코로 그것을 빼주기도 했단다. 정말 벨라 아줌마 말대로, 말 빼고는 사람 하는 거 다 하는 듯하다.
어느날, 예전 라구처럼 엄마를 잃고 돌봄이 필요한 또 다른 아기 코끼리 암무가 찾아온다. 라구와는 4살 차이. 봄만과 벨라는 라구와 함께 암무도 돌보는데, 이럴 수가, 라구가 질투를 한다! 암무한테 뭘 주려고 하면 다가와서 코로 암무를 밀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려고 하더라. 사람 아기도 동생 태어나면 질투한다던데, 동물들이 다 그런가보다. 그래도 라구와 암무는 이내 친해져서 함께 잘 지낸다.
아기 코끼리 둘을 함께 돌보며, 가까워진 봄만 아저씨와 벨라 아줌마는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에 아기들이 빠질 수 없다. 라구와 암무도 꽃단장을 하고 결혼식에 참석한다. 당당히 가족으로서 넷이 함께! (봄만 아저씨가 자꾸 화관에 달린 꽃을 떼어 먹는 라구에게 꽃 먹지 말라고 하는 거 몹시 웃기다.)
아쉬운 이별, 그러나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정말로 가족이 된 이들. 벨라 아줌마의 손녀인 산자나까지 다섯 모두 안온한 일상을 누리나 했는데 슬픔이 찾아온다. 산림청에서 라구를 다른 관리인에게 배정하기로 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라구를 정말 아이처럼 기른 봄만과 벨라는 산림청에 호소를 했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는다. 다큐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라구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독립심도 더 기르고, 봄만과 벨라에게는 아기 코끼리들을 전담으로 맡기려는 계획 아니었을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슬프긴 하다.
봄만과 벨라는 라구와의 이별에 큰 상실감을 느낀다. 봄만 아저씨는 인터뷰 하다가 눈물도 그렁그렁해지고, 벨라 아줌마도 아이를 또 잃어버린 것 같다고 슬퍼한다.
라구가 떠나는 날, 라구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산림청 직원을 따라가다가도 자꾸만 멈춰서서 뒤를 돌아 본다. 동생인 암무도 발이 묶여 있지만 라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암무가 큰 소리로 울며 라구를 부르자 라구가 다시 돌아와 둘이 서로 쓰다듬다가 결국 라구는 떠나고 만다. 암무는 그 후로 며칠 간 우유도 안 마셨다고 하더라.
그래도 같은 캠프 안에 있어서 그런지 영영 못 보는 건 아니었다. 멀리 있는 라구를 발견한 봄만 아저씨가 라구를 부르니 라구가 다가온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구도 봄만 아저씨도 다 안다. 서로 보고 싶었다는 걸, 서로 많이 애정한다는 걸.
이 다큐멘터리를 가족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이게 2022년에 촬영됐다고 하는데, 라구는 7살, 암무는 3살로 계속 잘 자라고 있다 한다.
40분이 언제 지났나 싶을 정도로 흐뭇한 미소로 보게 되는 다큐멘터리다. 코끼리는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지만, 뭔가 확실히 영특한 동물인 거 같긴 하다. 그 커다란 몸집과 기다란 코로 푸근하게 곁을 내주는 듯한 코끼리들. 자연의 풍경을 만끽하며 따뜻한 가족의 사랑과 힐링을 경험하고 싶다면,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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