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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토론 특집 <토론하면 좋은 친구 2>, 젊고 유망한 논객 '천하람 & 이탄희'

by 달리뷰 2023.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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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 1000회 특집 3부, 이번엔 미래를 향하다

100분토론 1000회 특집 중 지난 두 편은 과거를 주로 조명했다. 1부는 홍준표 시장과 유시민 작가가 패널로 출연했다. 레전드 토론짤, 대립하지만 사이가 좋아보이는 짤 등 과거 토론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끗발 날리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2부는 과거 진행자 손석희 사장과 현재 진행자 정준희 교수가 만나 그동안의 100분토론을 돌아봤다. 며칠 전 방송된 3부는 미래 지향적으로 구성됐다. 

 

젊고 유망한 정치인인 천하람 변호사와 이탄희 의원이 출연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개인적으로 둘 다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정치인들이라서 반가웠다. 특별히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가끔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말하는 걸 보면 꽤 차분하고 내용이 있어 보였거든. 목소리만 크게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며 억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이들이었다.

 

천 변호사는 86년생이니 한국나이로 38살이고, 이탄희 의원은 78년생이니 한국나이로 46살이다. 정치인으로서는 확실히 젊은 편이다. 100분토론이 2000회 특집을 하게 된다면, 이들이 마치 홍준표 시장과 유시민 작가처럼 토론계 원로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100분토론-토론하면-좋은친구-2탄에-출연한-천하람-변호사와-이탄희-의원-모습
100분토론에 출연한 천하람 변호사와 이탄희 의원

 

천하당당 천하람: 정치인을 너무 사랑하지 말자! 정치인을 이용하라!

이번 토론도 홍준표 시장, 유시민 작가 때처럼, 정치성향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지금 현 정치 체계가 토론을 잘하고 건강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등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천하람 변호사는 현재의 혐오 정치가 정치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같다고 해석하며, 정치인에 너무 유대감을 가지기보다는 그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도 사람이기에 부족함도 많고, 또 정치 세계 자체가 자연과학이나 공학 같은 세계에 비해 완벽하거나 철저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라도 잘못했을 경우 비판하고, 상대 정당이라 할지라도 잘한 것은 인정해 줘야 정치인들이 더 현명하게 처신하고 시민 사회를 위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니편 내편을 흑백처럼 갈라서, 네 얘기는 다 틀리고 내 얘기만 다 맞아,라는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내가 익숙하고 내가 알고 싶은 정보만을 편향적으로 제공하는 언론과 인터넷 포탈 추천 시스템의 탓도 일부 있다. 

 

그리고 천하람 변호사의 말 중에서 또 흥미로웠던 것은, 젠더 이슈와 갈등에 대해 논의할 때 '많은 남성들, 특히 사회적 규범에 잘 순응하는 남성들은 잠재적 성범죄자 프레임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연애할 자유 내지는, 약간 표현이 그렇지만, 이성을 꼬실 자유가 점점 사라져가는 되게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젠더 이슈와 연애의 감소 사이에 상관관계가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서, 동의하지는 않는다. (데이터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더 유효한 이슈가 있을 듯하고, 저런 이유는 간접적이거나 적을 것 같다는 게 내 가설이다) 그렇지만 나름 민감한 젠더 이슈에 대해 나름 자기 자신의 가설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 상대의 말도 듣고 자기 의견도 온당하게 펼치고 싶은, 그런 태도가 보였달까. 

 

솔직히 나이와 경력 때문인지, 천하람 변호사는 이번 토론에서 살짝 업텐션이라고 느껴졌다. 유머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도 조금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더 차분하고 맥락 있게 말할 여지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시민과의 질의응답에서, 토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왜 정치인들의 토론은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니, 천 변호사가 이런 대답을 했다. 토론에 나가서 너무 상대 말을 경청하면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혼나고, 큰 소리로 자기 할 말 쏟아내야 지지자들이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말 때문에 이런 노선을 취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번 백분토론은 그렇게 대립하는 토론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럴 일은 없었다) 갈등하고 있는 듯싶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천하람 변호사가 정치를 계속 하고 이런 토론에도 지속적으로 나온다고 쳤을 때, 10년 뒤, 20년 뒤 어떤 정치인이 되어 있을지 아직은 아무런 기대도 실망도 들지가 않는다. 내 기준에서는 눈살 찌푸려지는 (그러나 일부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환대받는) 꼰대 정치인이 되어 있을지,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으로 대세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정치를 위해 애쓰는 정치인이 되어 있을지, 지켜볼만할 거 같다. 

 

논리탄탄 이탄희: 쉬운 정치가 만연한 암울한 현실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

이탄희 의원은 이전 토론이나 청문회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제법 많았다. 아주 차분하게 말하는데, 몹시 단단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심이 아주 잘 잡혀 있다. 

 

이번 토론에서는 조금씩 다룬 (특집이니만큼 하나를 깊게 파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 훑는 방식으로 진행됨) 노동시간 문제, 젠더 갈등, 정치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핵심을 아주 잘 꿰뚫고 있었다. 이를 테면, 젠더 이슈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행자가 '젠더 갈등이 현존하는 이슈라고 보는가? 아니면 과잉 포장된 이슈라고 보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탄희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어느 쪽으로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냥 있는 것이고요,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정치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여성이든 남성이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삶에서 느끼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본인들이 혼자의 힘으로 해결이 안 돼요. 그걸 해결해 주는 게 정치거든요. 해결을 해주면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변화들은 뒤따라옵니다. 이 문화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우리가 갈기갈기 쪼개져서 서로 간에 이런 텐션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 텐션을 낮춰주는 게 정치의 할 일이지, 그거 자체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 저는 별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비단 젠더 이슈뿐 아니라 대부분은 사안에도 해당한다.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 텐션을 조장하고, 거기서 눈에 띄는 (주로 과격한) 말을 SNS나 인터뷰 등에서 던짐으로써 인지도를 높이고 유명세를 타는 건 쉬운 정치다. 그러나 진짜 정치는 그런 말들로 이렇다 저렇다 논평을 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게 아니라, 소방차 몰고 가서 물 끼얹어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정치는, 꼭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불을 끄기보단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이 더 큰 입지를 갖게 된다. 이건 정치와 정치인의 잘못도 분명 있지만, 민주주의 제도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는 시민들의 책임도 크다. 과연 해결될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만.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백분토론 연장전에서 어떤 시민이 이탄희 의원에게 '초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약자들을 조명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는지' 물었다. 이 의원은 판사를 하다가 정치의 길로 들어서면서 인생을 한 번 정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인생에서 중요한 걸 두세 개만 남기자고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어려운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눈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후 공황증으로 두세 달 쉬면서 두세 개를 또 털어 단 하나만 남겼는데, 그게 이거라고 했다. 여러모로 꽤 의미 있는 말이었다. 정치인뿐 아니라 누구라도, 인생의 어느 포인트에서는 우선순위를 제대로 적립하고 버릴 것을 버리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건강한 토론, 환영합니다!

이탄희 의원은 정치인들이 현장에 더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생을 알려면 현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현장, 사고현장, 재난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의 말을 듣고, 현실을 체감하야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듯하다. 수긍이 됐다. 

 

그런데 한참 뒤 천하람 변호사 다른 이슈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탄희 의원의 '현장'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했다. 정치인들이 현장에 가보는 건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현장이라도, 그 시점, 그 사람에게서 단편적인 이야기만 듣고 과대해석 해서 즉흥적 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본래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적극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정치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안했다. 이 역시 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정치인들이 현장에 가는 게 좋은지 아닌지는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닐 거다. 현장에 따라 다르고, 정치인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왜 나쁜 정치가 만연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건강한 의견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백분토론 특집은 취지 자체가 다소 화기애애한 분위기(제목부터 '토론하면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본격 토론에서는 좀 더 첨예하고 날카로울 수 있을 거다. 그러나 토론을 하면서, 이것과 저것 중 하나만이 옳기에 하나만을 택하기보다(물론 이런 경우도 있긴 하다), 드러나 있는 문제의 이면에 자리한 본질적 문제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한 번에 뽑히지는 않을지라도 끝내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같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보다 나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꽤 희망적인 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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