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000회를 맞이한 100분 토론, 특집방송 3부작 편성
MBC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은 1999년에 시작했다. 24년째인 지금, 1000회를 맞이해서 특집 3부작이 편성됐다. 그중 1부가 어제(4월 9일) 방송된 <토론하면 좋은 친구>이고, 2부는 4월 11일 밤 9시에 방영될 다큐멘터리 <그래도, 토론>이고, 마지막 3부는 4월 18일 밤 11시 30분에 방영될 <토론의 미래>이다.
<토론하면 좋은 친구>에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시민 작가가 나왔다. 사회자인 정준희 교수까지 셋이서, 평소보다는 무겁지 않은 주제와 분위기로 방송을 했더라.
정치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친구, 연인, 부부가 될 수 있을까?
홍준표 시장과 유시민 작가는 예전에도 몇몇 토론에서 각기 다른 쪽을 대표해 나와서 함께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둘 다 말을 나름 잘 하는 데다가 서로에 대한 존중도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 눈살 찌푸려지는 고집 일변도가 아닌 흥미롭고도 유쾌하기까지 한 토론 짤들이 몇 개 있다. 유튜브 영상 뷰가 몇백만을 넘어선 걸 여러 개 본 듯하다. 그래서 100분 토론 1000회 특집에 어울리는 논객들이기도 하고.
첫 주제는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 친구, 연인, 부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사전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니 정치성향 달라도 '친구' 될 수 있다가 50.9%, 아니다가 14.4%더라. 나머지는 34.7%는 반반이라는 응답이었다. 친구는 그래도 좀 관대한 편이었다. '연인'이 될 수 있는지는 그렇다 36.7%, 아니다 30.5%였고, '부부'가 될 수 있는지는 그렇다 35.7%, 아니다 34.3%였다. 정치성향 다르면 친구, 연인, 부부가 될 수 없다는 응답이 꽤 많다.
나로서는 설문결과가 좀 의외였다. 개인적으로 정치성향이 달라도 친구, 연인, 부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과도하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며,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성향이 달라도, 서로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과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고, 정치성향이 같더라도 극단적이고 비논리적인 사람과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생각이 지극히 일반적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홍준표 시장과 유시민 작가도 설문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홍준표 시장은 본인이 약 삼십여 년 전 와이프와 정치성향이 달라서 생긴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유시민 작가는 친구의 뜻을 정의하면서 답을 시작했는데, 꽤 수긍이 갔다.
유 작가의 말로, 자신은 친구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하나, 다른 목적 없이 만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이. 둘, 만나는 동안 특별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고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이. 그런데 정치성향이 너무 다르면, 첫째 조건은 만족할 수 있어도 같이 있다 보면 둘째 조건이 잘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정준희 사회자가 "그렇다면 두 분은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시는가" 물었더니, 홍준표 시장은 "뭐, 그렇죠."했는데, 유시민 작가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 그래도 화기애애하고 다들 웃음을 터뜨려서 평소 백분토론과는 다른 훈훈한 분위기였다. 괜찮은 특집이자, 적절한 특집 제목이었던 거 같다.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는?
다음 주제는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는?'이란 질문으로, 이 역시 설문조사를 통한 시청자 응답을 먼저 확인하며 시작했다. 복수응답이 가능했고, 상위 다섯 개를 추려보니 국내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1위 물가 안정과 민생 경제, 2위 저출산 대책, 3위 주거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 4위 검찰과 사법개혁, 5위 한일외교와 과거사 문제였다.
이런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현 정부가 제대로 된 토론을 이끌고 있다고 보는지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유시민 작가는 아예 토론 자체가 없는 정부같다고 단호하고 시니컬하게 답했다. 홍준표 시장은 과거 어느 정부도, 노무현 정부를 제외하고는, 토론을 공개적으로 활발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현재 정치 상황이 토론이 쉽지 않다는 것도 같이 지적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둘이 각자의 사례와 논리를 들어가며, 특집 방송치고는 꽤 날카로운 대립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홍준표 시장이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지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속내가 얼핏얼핏 드러났다. 윤 정부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고 있다던데, 다 같은 맥락이겠지.
시급한 토론 주제로 뽑힌 주제 몇몇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서로 견해를 말하고 반박하는 시간도 있었다.
현재 정치에서 토론이 잘 안 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 탓?
시급한 토론 주제를 묻고, 지금 그 이슈들이 잘 토론되고 있는지를 물었으니, 다음 질문은 자연스레 '토론이 잘 안 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였다. 성인 1000명 대상으로 중복응답을 하는 설문조사 결과 65.9%는 국민의힘, 62.1%는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탓이라는 응답은 37.8% 였다.
유시민 작가는 이에 대해서, 현재 대통령을 보면서 스스로 느끼는 답답함과 미흡함을 신랄하게 토로했다. 홍 시장은 민주당이 정부를 돕지 않고, 당 대표 방탄만 집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쪽 얘기도 저쪽 얘기도 다 새롭지는 않았다. 해결 방안은 없을라나. 정치란 원래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홍준표, 유시민 차기 대선출마?
이건 살짝 웃자고 넣은 코너 같기도 한데, 두 패널에게 각각 차기 대선출마에 대해 물었다. 그렇다, 아니다, 반반이다로 답할 수 있다며. 홍준표 시장은 "3년 뒤에 답하겠다"고 넘어갔고, 유시민 작가는 "절대 출마할 생각 없다"고 말했다. 현역 정치인과 전직 정치인으로서 둘 다 솔직하게 말한 거 같다. 다음 대선은 아직 멀었기 때문에 별로 큰 관심이 생기진 않지만, 과연 여당에서는 어떤 후보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다.
1000회 특집, 편안했던 1부와 기대되는 2, 3부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들을 가지고 특집방송이 이어졌다. 두 패널에게, 진보, 보수의 갈림길에서 처음에 그 길을 택한 이유와 지금도 그 길을 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각자가 생각하는 보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었고. 마지막은 사회학과 학생인 스무살 청년의 '뭐 먹고살아야 하느냐' 이런 질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질문 같지는 않다. 무난한 대답과 질문자의 준비한 듯한 첨언으로 적당히 잘 넘어갔다.
이번 100분 토론 1000회 특집 1부는, 그동안 경청과 논리는 부족하고 고집과 우김이 과다했던 몇몇 토론이 주는 피로감을 씻어주는 방송이었다. 홍준표 시장과 유시민 작가라는, 토론계 원로들이기에 가능한 분위기였달까. 2부 <그래도, 토론>은 다큐멘터리라기에 어떨지 기대되고, 3부 <토론의 미래> 이탄희 의원과 천하람 위원장이 등장하는 젊은 토론이 될 거 같다. 두 패널 다 경청과 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이라서 기대된다. 챙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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