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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TV

기괴하나 희망적인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by 달리뷰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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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설명에 이끌려 재생! 그런데 범상치 않다, 이 애니메이션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랑을 만나는 남자. 험난한 여정 끝에 주인을 만나는 손.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도 애처롭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모험이 섞인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이게 넷플릭스가 보여주는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모험이 섞여 있다는 말에 혹했다. 조금 더 찾아보니 프랑스 영화로는 꽤 재밌게 본 <아멜리에> 각본에 참여한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더군.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지만, 81분이라는 만만한 러닝타임에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5분도 안 되어 생각했다.

 

'뭐지, 이 영화는?' 

 

일단 그림체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신선했다. 한국이나 일본의 만화책에 익숙한 나는 미국과 프랑스 만화책 그림체가 원래 낯설게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프랑스 만화책은 '설국열차' 하나 밖에 안 봤지만.)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괴하고, 불안한 호기심을 살살 자극한다. 이색적인 느낌이라 매력적이기도 하면서, 솔직히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별 취향 없이 문득 이 애니메이션을 클릭했다면, 5분 안에 꺼버릴 사람들이 꽤나 많을 거 같다. 나도 그럴 뻔했다가, 대체 넷플릭스가 이걸 왜 아름답고 애처로우며, 매혹적이라고 했는지 궁금해서 다 봤다. 

 

다 보고 나니, 이유를 조금 알 거 같다. 하지만 끝까지 제법 기괴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 2019년과 2020년에 꽤 많은 애니메이션 상을 탔다. 호불호가 분명 강할 영화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lt;내 몸이 사라졌다&gt; 중 한 장면. 가브리엘과 나우펠.
내 몸이 사라졌다의 주인공 나우펠(우)이 가브리엘에게 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출처: 넷플릭스 해당 영화)

 

주인공의 오른손이 자신의 몸을 찾아가는 여정

해부학실에서 잘린 오른손이 마치 눈과 자아를 가진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발 삼아 이동을 한다. 영화 초반부가 이렇다. 희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험실을 탈출한 손의 움직임이 현재이고, 종종 과거가 교차되어 보여진다. 손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청년 '나우펠', 그리고 나우펠의 어린 시절들이 조각조각 나타난다. 

 

나우펠은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와 우주비행사가 되길 꿈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리고 아빠가 선물해 준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카세트테이프에 온갖 것들을 녹음하곤 했다. 그런데 아빠,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나우펠이 위험할 정도로 창밖으로 팔을 뻗어 장난을 친다. 창 밖에 손을 내밀지 말라고 아빠가 주의를 주는데, 그 순간 산짐승이 길에 나와서 사고가 나고 만다. 그리고 이 사고로 나우펠의 부모는 죽고 만다. 

 

(이런 전사가 영화 중간중간 토막나서 나오기 때문에, 영화를 다 봐야만 비로소 매끄럽게 연결된다. 보는 중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긴장을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나우펠은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이 된다. 그러나 배달에 그리 소질이 없는지 20분 내에 배달하지 못하면 피자를 공짜로 줘야 하는 '패스트 피자' 사장에게 자주 혼이 난다. 비가 오던 어느 날도, 오토바이로 배달을 가다가 가벼운 사고가 난다. 그래도 몸을 추슬러 배달을 갔는데, 다 망가진 피자를 차마 전달하지는 못하고 고객이랑 인터폰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그 고객이 바로, 나우펠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가브리엘'이다. 

 

가브리엘이 도서관에 근무하는 걸 알고, 찾아간 나우펠은 가브리엘을 따라가다가 그녀의 삼촌 '지지'가 하는 목공소에 조수로 취직하기도 한다. 지지는 조수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나우펠이 고아인 걸 알고는 다락방을 내어주며 일을 가르친다. 가브리엘과도 서로 조금씩 친해진다. 나우펠은 나무를 잘라서 어느 옥상에다 가브리엘이 좋아하는 이글루를 만든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나우펠이 그때 그 피자배달부라는 것을 알고는 조금 토라진다. 나우펠이 아픈 삼촌에게 접근한 이유가 순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우펠이 나무 절단기에 오른손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이 잘린 오른손이 영화에서 험난한 여정을 하는 주인공인 것이다. 

 

벌레와 쥐와 새에게 고초를 당하기도 하지만, 오른손은 끝끝내 나우펠을 찾아간다. 잘린 손 부위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나우펠. 오른손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간다. 그러나 손이 다시 붙는다든가 하는 식의 엔딩은 아니다. 사고를 당하고 절망하는 나우펠과 사고 소식을 듣고 나우펠을 찾으러 온 가브리엘이 교차되며 영화는 끝을 향해 간다. 

 

나우펠은 사고 이후 옥상으로 가는데, 가브리엘은 나우펠이 이때를 녹음한 테이프를 통해 그의 행적을 듣는다. 이쯤이면 시청자들은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혹시 나우펠은 뛰어내릴 생각인 건가. 그러나 나우펠은 뛰어내리지 않는다. 뛰긴 뛰는데, 내려가려고 뛰는 게 아니라 건너가려고 뛴다. 그렇게 뛰어서 건너편 크레인에 닿는다. 그리고는 후련한 듯 웃는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우펠의 오른손도 제 몫을 다한 듯 물러간다. 

 

운명을 피해 냅다 뛰며 행운을 비는 모든 자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영화

이미지는 다소 매니악하지만, 사운드는 몹시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용도 어둡고 무거워보이지만 끝내는 희망적이다. 이 영화가 왜 희망을 말하는 영화인지는 다음 대사와 마지막 장면으로 다 설명된다. 아래 대사 중 볼드체 표시를 한 것이 나우펠이고, 대화의 상대는 가브리엘이다. 옥상에서 건너편 크레인을 보며 이런 대화를 한다. 

 

운명을 믿어요? 진짜로요.

인생은 다 정해져 있고, 우린 그냥 따라갈 뿐이라고요?

그래요. 

아무것도 못 바꾸고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우리가 아예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마법을 걸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왜 있잖아요. 걸을 때 여기로 오는 척하며 농구할 때 속이는 동작처럼 딴 길로 새서 저 크레인으로 점프하는 거에요. 하면 안 되는, 뭔가 즉흥적인 일, 금지된 행동을 하는 거죠. 덕분에 다른 세상에 가서 잘됐다며 후회도 안 해요. 그런 거요. 

그러고요? 드리블로 운명을 피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그때요? 계속 피하는 거죠. 냅다 뛰는 거에요. 행운을 빌면서요. 

- <내 몸이 사라졌다> 중 -

 

나우펠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고, 사랑이 싹트는 풋풋한 와중에 또 사고가 나서 오른손을 잃었다. 그 오른손은 몸을 찾아 어려운 길을 떠난다. 사람이 서 있으면 보통 160~180cm 높이에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이 오른손은 바닥을 걸어 다니며, 벌레와 쥐가 다니는 세상을 본다. 영화 속에서 나우펠과 가브리엘이 인터폰으로 처음 대화할 때, 가브리엘의 집은 35층이라서 나우펠이 거기서는 뭐가 보이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마저도 스쳐가기에 빗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소리만이 들린다고, 가브리엘은 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앞서 설명했듯 오른손을 잃은 나우펠은 물론 절망하지만, 결국은 점프를 한다. 옥상에서 냅다 뛰어 크레인에 가 닿는다. 영화의 끝이 이렇다. 그 후 나우펠은 어떻게 살까? 냅다 뛸 것이다. 행운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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