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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견해

사람의 자기 정체성: 카이스트 갑질 학부모를 연민하며

by 달리뷰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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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의 유치원 교사에게 전화로, 자기는 카이스트 나왔는데 당신은 어디까지 배웠냐는 말을 한 학부모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자기에게 달린 훈장이나 인맥을 사용한다. 조금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부터 시작해서,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내 아들이 OO야' 등등이 다 비슷한 부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안타깝다. 자기가 '무엇'이라고 과시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가 그 '무엇'을 가질만한 능력이 별로 없는데 갖게 된 경우가 많다. 일단 인맥의 경우, 즉 자기 가족이나 친지의 위치를 자랑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자기가 가진 게 없으니 자기 지인이 가진 걸 자랑하는 것이다. 학벌을 자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학교의 자랑이 되곤 하나, 자기 실력에 과분한 학교에 들어간 사람이 학교 이름 자랑한다. 설령 실력은 어느 정도 갖춰서 명문 학교에 갔다 한들, 고작 학벌을 자랑하는 인성은 학교에 부끄러움을 안겨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나 카이스트 나왔는데'라며 자기 아이의 유치원 교사의 학벌을 묻는 학부모는 자기 실력과 인성이 초라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근데 그걸 모르고 자기 입으로 떠들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리오. 물론 마음 아픈 안타까움이라기보다, 짜증 나는 안타까움이긴 하다. 

 

자기의 학벌과 자산, 인맥이 자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인 건 맞지만,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은 아니다. 내가 정말 누구인가에 대한 고찰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수단들을 자랑한다. 본질이 비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와 사회가 그런 수단을 본질처럼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을 읽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떤 시대와 사회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은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찾은 자기가 초라하고 볼품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적어도 학벌과 인맥 같은 걸 과시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불쌍한 인간은 되지 않는다. 헛된 과시형 인간들에게는 발전의 여지도 안 보이지만, 숙고와 고찰 속에서 자기와 타인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머릿속에-생각이-많은-사람을-그린-일러스트
머릿속에 들어야 하는 건, 과시가 아니라 생각


사족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저 비슷한 상황에서 해당 유치원 원장이었다면 아이를 전원 시키도록 조치할 것 같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란 건 분명하다. 학부모 측에서 더 길길이 날뛰며 고소를 하거나 안 좋은 소문을 낼 수도 있다. 더 어려운 부분은 어디까지가 정말 끊어내야 할 갑질이고, 어디까지가 서로 용납해야 할 논쟁인지 가르기 어렵다는 거다. 이를 테면, 학부모가 언성을 높이면서 '선생님,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당신 같은 사람이 교사해도 되는 거야?'라고 화를 냈다 치자. 근데 교사가 실제로 잘못한 게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아이 일로 화가 난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잘못을 사과해야 할 수도 있다. 근데 만약 교사가 실제로 잘못한 게 없는 경우라면? 교사의 잘못인지 아닌지 애매하거나 알 수 없는 경우라면? 인간관계가 이래서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규칙이나 원칙으로 모든 경우가 커버되지 않는달까. 가능하지도 않고 능력이 되지도 않을 때가 많다. 

 

다시 좀 돌아와서, 내가 유치원 원장이라면, 그리고 이 유치원에 학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힘들어하는 교사가 있다면, 여러 상황을 충분히 숙고한 뒤 학부모 갑질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아이를 전원 조치 시킬 것 같다. 그래야 해당 교사뿐 아니라 다른 유치원 교사들도 직업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것은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의 복지 향상과도 연결될 것이다. 애초에 유치원에 처음 들어오는 경우, 이런 식의 유치원 방침을 잘 전달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동의서를 받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만약 유치원이 적자라서 한 명의 유치원비도 아쉬운 상황이라면 갈등이 크겠지.. 갈등 속에서도 옳은 선택을 하는 자가 도태되지 않고 성장하는 사회가 되길..)

 

정상적이고 상식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만 있는 세계, 불가능할 거 같긴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비율을 높일 수 있는 게 교육이고 문화라고 생각한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그런 방향으로 잘 나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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