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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

바츨라프 스밀의『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비관도 낙관도 아닌 과학의 눈으로 본 세계

by 달리뷰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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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스밀은 누구? 환경과학자, 경제사학자, 통계분석가, 환경지리학과 교수, 빌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

사실 나는 이 책을 통해 바츨라프 스밀을 처음 알았다. 저자는 체코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에너지에 집중해서, 다양한 방법(과학, 역사, 통계 등)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데에 공헌했다. 에너지는 늘 정부와 산업계의 큰 주제이고, 게다가 최근 들어 환경 문제가 크게 떠오르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바츨라프 스밀은 세계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에 기여한 학자로 인정받는다. 

 

한 마디로 바츨라프 스밀 세계적인 저명한 에너지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캐나다 왕립과학 아카데미 회원, 2010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선정 세계적 사상가 100인 중 1인, 비미국인 최초의 미국과학진흥회에서 주는 '과학기술의 대중이해상' 수상 등 화려한 인정 이력도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라는 수식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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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스밀의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내가 읽은 이 책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2023년 3월에 한국어 초판이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간인데, 이전에 쓴 책들도 제법 인기를 얻은 것 같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대전환』,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 디자인』 등 40여 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디지털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는 물질 세상에 산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쳐보자. 그럼 1973년이다. 자동차도 다니고 비행기도 다닌다. 물론 지금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닌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고, 개인 컴퓨터도 없다. 집 전화기와 라디오, 텔레비전이 소통과 가정내 여가의 주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에게 50년 후, 혹은 100년 후, 발전된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휴대 가능한 작은 전화기로 음악도 듣고, 영상도 보고, 쇼핑도 하고, 게임도 하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많이 없었을 거 같다. 오히려 하늘을 나는 개인 비행차, 우주여행이나 심해여행, 이런 걸 떠올리지 않았을까?

 

즉, 지난 수십년 간 세상은 물질 차원에서는 혁신적인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디지털 차원에서는 정말 놀라울 만큼 거대한 변혁을 이뤘다. 특히나 최근 10년은 인공지능이 바둑에서도 거뜬히 이기고, 튜링 테스트 통과가 가능할 정도로 대화를 하고, 대다수 사람보다 똑똑하게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기도 하니, 이 변화의 속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질 세계보다 디지털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보이는 듯도 싶다.

 

그러나 지금 큰 위기를 맞은 '지구 환경'은 대표적인 물질 세계다. 물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나는 그 어떤 정부 정책도 다 공허하게 들렸다. 내가 이전에 포스팅한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에서도 잘 지적하듯, 세상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자본주의에 반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소비를 줄이고, 돈이 덜 벌리는 등등의 이슈) 방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경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데, 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물질세계'를 직시해야 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과 반도체가 아닌, 식량과 석유와 플라스틱 등을 봐야 한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인데, 이 책이 이런 점을 아주 잘 짚어주고 있다. 읽으면서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게다가 워낙 저명하고 연륜있는 학자이다 보니, 각국 정부 및 유명 인사(유발 하라리, 노암 촘스키 등)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비판의 타깃이 나라나 사람은 아니고 그들의 언행이기에 그다지 불편하거나 거슬리지도 않는데, 몹시 풍자적이라 통쾌한 맛이 좀 있다. 

 

솔직히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번 읽어볼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특히 정책 당국에는 필독서여야 한다. 

 

목차로 살펴보는 책의 내용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이것을 나름 엄밀한 자료와 수치로 설명하다 보니 잘 안 넘어가는 페이지가 많다. 요약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하나하나의 소챕터가 그리 길지 않아서, 간혹 길을 잃어도 다시 정신 차리기는 수월하다. 그래서 다소 길지만, 책의 목차를 옮겨놨다. 이 책이 뭘 말하려는 책인지 파악하는 가장 좋은 가이드라인이 이 목차다. 

차례

1. 에너지에 대하여 - 연료와 전기
근본적 변화
근현대의 에너지 사용
에너지란 무엇인가?
원유의 사용 증가와 상대적 후퇴
전기의 많은 이점
스위치를 올리기 전에
탈탄소화: 속도와 규모

2. 식량 생산에 대하여 - 화석연료를 먹는다
세 계곡, 두 세기의 간격 
무엇이 투입되었는가?
빵과 닭고기와 토마토의 에너지 비용
해산물 뒤에는 디젤유
연료와 식량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덜쓰고... 궁극적으로는 제로로!

3. 물질세계에 대하여 - 현대 문명의 네 기둥 
암모니아: 세계인을 먹여 살리는 기체
플라스틱: 다양하고 유용하지만 골칫거리
강철: 어디에나 있고, 재활용할 수 있는 물질
콘크리트: 시멘트가 창조해낸 세계
물질에 대한 전망: 현재와 미래

4. 세계화에 대하여 - 엔진과 마이크로칩, 그리고 그 너머
세계화의 머나먼 기원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한 세계화
증기기관과 전신
최초의 디젤엔진, 비행과 무선
대형 디젤엔진과터빈, 컨테이너와 마이크로칩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인도의 등장
다양한 분야에서의 세계화
무어의 법칙
필연, 후퇴와 과욕

5. 위험에 대하여 - 바이러스부터 식습관과 태양면 폭발까지
교토에서, 혹은 바르셀로나에서 먹듯이 먹어라
위험의 용인과 지각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위험의 계량화
자발적 위험과 비자발적 위험
자연재해: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
우리 문명은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지속되는 사고방식

6. 환경에 대하여 - 우리가 가진 유일한 생물권
산소는 위험한 수준에 있지 않다
앞으로도 물과 식량이 충분할까?
왜 지구는 영구적으로 얼어붙지 않는가?
누가 지구온난화를 발견했는가?
더 더워진 세계에서 산소와 물과 식량
불확실성과 약속, 그리고 현실
희망 사항
모형, 의심과 현실


7. 미래에 대하여 - 종말과 특이점 사이에서
실패한 예측
관성, 규모와 질량
무지, 관례의 반복 그리고 겸손
전대미문의 노력, 지체되는 보상

 

개인적으로 현대 문명의 네 기둥을 암모니아, 플라스틱, 강철, 콘크리트로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현대 경제는 앞으로도 위 네 가지 물질의 공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세계인구를 먹이려면 암모니아에 기반한 비료를 공급해야 한다. 또 새로운 기구와 기계를 만들고, 구조물과 기반 시설을 세우려면 플라스틱과 강철과 시멘트가 필요하다. (..중략..)
인공지능과 애플리케이션, 전자 문서로는 이런 변화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p.183

 

그래서 결론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되는데?

환경 문제에 초점을 두고 보자면, 미국, 유럽 및 주요 선진국에서 말하는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에 따르면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2040년에도 화석연료는 세계 총수요에서 72%를 차지할 것이고, 아주 많이 줄어든다고 가정해도 54%를 차지할 전망이다. 그런데 2050년에 제로가 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p.78) 그리고 왜 이게 안 되는지도 요소요소 잘 설명해 준다. 

 

그럼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막지 못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져서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될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 극단적인 두 전망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한다. '완전 망한다는 비관'과 '완전 해소한다는 낙관'은 둘 다 별 근거가 없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 미래가 어찌 될 거라고 점쟁이 예언하듯 말해주는 건 아니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듯, 자기는 낙관도 비관도 아닌 과학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하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저자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세계 모두의 집단 결의가 필요하다는 점, 부유한 국가들이 일인당 평균 에너지 사용을 큰 폭으로 줄이고, 가능한 해결책과 조정 방향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규모 전기 저장'이나 '대규모 탄소 포집' 같은 비현실적 기술 혁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인다. 

 

그렇지만 역시나 또 현실성의 문제에 부딪친다. 

 

부유한 국가의 젊은 시민들이 즉각적 이득보다 먼 편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저소득 국가들은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로 화석 탄소에 대한 의존을 늘려가는데, 부유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반세기 이상 동안 절약해야 하는 삶을 기꺼이 수용할까? 지금 40~50대도 자신들은 생전에 누리지 못할 보상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그런 삶에 기꺼이 동참할까?
p.397~398

 

결국 또 도돌이표다. 어쩌면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원리는 결국 자본주의와 이기주의(시장경제의 기본 전제로서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게 당면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처럼 즉각적으로 퍼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하면 각종 긴급 처방이 내려지겠지만, 환경 문제는 전염병보다 느리게 진행되기에 긴급 처방이 먹히지도 않을 거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알았는데,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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