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퍽 슬프다. 이 책 자체가 가진 전반적인 분위기와 매우 닮은 제목이라 할 수 있겠다. 아주 오래전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듣고 처음 알게 된 책인데, 그때 찾아서 읽고 내 삶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몇몇 물음표들이 떴었다.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다소 막연하고 서글픈 느낌의 물음들이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 다시 꺼내 읽어 보고 싶어서 펼쳐 들었다.
[줄거리] 전도유망한 30대 의사의 마지막 2년의 기록
저자 폴 칼라니티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났고, 스탠포드 대학 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들이 수련할 때 대개 그러하듯,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몹시 능력자였는지, 권위 있는 상도 수상하고 일류 대학 교수 자리도 제안받았고, 의사 동료인 루시와 결혼을 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탄탄대로가 보장된 것 같은, 고생도 많이 했지만 결실도 확실해 보이는, 그런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레지던트 생활이 끝나갈 무렵 폴은 서른넷 나이에 폐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그로부터 그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까지 2년 간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폴 칼라니티는 뛰어난 의사였을 뿐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기에 그의 글은 정연하면서도 섬세하고, 성찰적이면서도 부드럽다. 이 책의 제목, '숨결이 바람 될 때', 영어 원제로는 'When Breath Becomes Air'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 챕터의 제목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이다. 의사였던 아버지, 바빠서 자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농축적으로 부성애를 발휘하던 아버지를 보고 폴은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린 폴은 애리조나의 킹맨이라는 사막도시를 누비면서 자유를 만끽했고, 어머니가 주는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언어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그가 당시 읽은 책들은 『1984』, 『로빈슨 크루소』, 『돈키호테』, 『군주론』 등을 비롯해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의 저서이다. 이 책이 의사의 글이면서도 문학 애호가의 글답게 부드럽고 깊이 있는 까닭이 이런 배경 덕이다.
실제로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대학생이던 그는 직업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고민이 깊었다. '무엇인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p.52)' 그의 바로 답한다.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p.52)'
그는 여러 고민과 경험 끝에 의과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리고 거기서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p.74)'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환자 몸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마주한 환자들의 눈빛과 반응 속에서 인간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종의 철학자이기도 했다.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 『숨결이 바람될 때』, p.116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늘 차분하지만은 않다. 바쁜 일상, 수많은 고통의 목격 속에서, 그는 조금씩 무뎌지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또 이런 스스로를 자각하고 조금씩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다 이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책 속에서 폴이 겪은 여러 경험들은 꽤나 강렬하다. 아무래도 죽음을 항상 가까이에 두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책의 후반부는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는 챕터로 구성된다. 폐암 선고를 받고, 아내와 슬픔을 나누고, 혼자 절망 속에서 숨 막혀 가고, 마음을 추슬렀다가, 희망을 품기도 했다가, 정말로 몸이 호전되기도 했는데, 다시 또 나빠져 버리는 그런 시간들이다.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의 삶, 그가 경험한 또 다른 깊이다.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이후, 아내와 상의 끝에 시험관 수술을 한다. 그리고 딸 케이티가 태어난다. 이 책의 가장 앞 헌사에는 '내 딸 케이티에게'라고 적혀 있다. 케이티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폴은 숨을 거두었다. 케이티는 이 책이 곧 자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의 길고 슬픈, 그렇지만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가 될 것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숨결이 바람될 때』, p.234
책의 마지막은 폴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잘 참아왔던 눈물이 여기서 뚝뚝 떨어지고 만다.
[감상] 삶과 죽음, 그 모든 과정 속에서의 어떤 의미
이 책은 여러 명사들의 진정어린 추천사에 걸맞게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봄직한, 슬프지만 아름답고 두렵지만 마주해야 할 그런 글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특히 후반부를 읽어가면서 나는 조금 더 저차원적인 의미로 속상하기도 했다. 내가 폴의 가족이었다면, 그가 조금 더 쉬고 조금 더 자기 몸을 돌보길 바랐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몸이 조금 호전되자 그는 다시 진통제의 힘을 빌려가며 의사로서의 일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짧은 순간은, 느슨하게 조금 더 이어지는 시간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가 폴의 입장이었다면, 폴과 같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단 하루, 단 10분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걸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너무 현실적으로 몰입했더니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느라 이 책의 본질이 조금 흐려졌지만, 책장을 다 덮은 지금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폴이 마지막으로 전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들어가는 의미들을 새겨본다. 아름답고 먹먹한 그의 마지막 여정은,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각자 나름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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